나는 88학번이다. 올림픽 덕분에 '88 꿈나무(올림픽 메달사냥을 위해 조련되던 국가대표 상비군을 일컽는 말)'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학번이다. 올해 신입생들이 08학번이니, 딱 20년 전 얘기다. 당시, 나의 대학 등록금은 1학기당 4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20년이 지난, 올해 1년간 대학 등록금 최대치가 천만원을 넘는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록금을 받던 국립대도 대폭 인상을 통해, 사립대 수준과 비슷하게 맞춘다는 억장 무너지는 뉴스가 들리는 걸 보면, 돈없는 이들은 대학 조차 다니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그렇다면, 20년 전 등록금과 올해 등록금의 체감 수준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88년도 까지만 해도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던 시절이다. 농촌에서 자식 하나 대학에 보내려면 소를 팔아야 했기에 생긴 말이다. 당시 소 한 마리 가격(암소 기준)은 180만원 정도. 시세가 좋으면 200만원쯤 받을 수 있었으니, 농가의 재산 목록 1호였던 암소 한 마리를 팔면, 부족하나마 얼추 등록금에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우 암소 한 마리가 450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하니, 두 마리를 팔아도 1년치 등록금을 대기도 벅차단다. 소값이 2.5배 정도 오르는 사이, 대학 등록금은 5배가 올랐다. 이제는 소 뿐만아니라, 땅도 팔고, 집도 팔아야 그나마 등록금을 댈 수 있는 시대가 돼버렸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 가장 많은 학생들이 했던 아르바이트는 3가지.
첫째는 이른바 '서빙'. 카페나 음식점, 호프집에서 하루에 10시간 정도 한 달 내내 일하면 보통 15만원에서 18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종이었다.
둘째는 '노가다'로 불리던 공사장 잡역부. 8시간 정도 일하고 받는 임금은 하루에 1만원. 이론 적으로는 한 달 꼬박 일하면 '서빙'의 두 배인 30만원을 손에 쥐는 셈이지만, 막노동은 아무나 하나? 공부만 하던 학생들의 경우, 하루 일하면 사흘을 앓아 누워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으니, 보통 학생들은 한 달에 보름 정도가 한계였다. 이른바 '노가다'는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선택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셋째는 '과외'. 당시 방문 과외는 엄연히 불법이었다. 하지만, 요즘도 그렇듯, '돈'은 항상 '법'보다 상위 계념이니, 상류층 자제들은 쉬쉬하며 고액의 불법 과외를 하고 있었고, 당시 과외비는 '불법 프리미엄'이 붙어, 보통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뛰어난 학벌과 탁월한 영업력(?)을 갖추고 있었던 내 친구는 당시, 한 달에 200만원까지도 벌었다고 하니, 투자 대비 수익이 가장 높은 직종이 바로 과외였다. 하지만,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치하에서 과외는 극히 일부의 수익원이었을 뿐, '빽' 없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기의 영역이었다.
나의 경우, '서빙'과 '노가다'의 경험이 있다. 서빙은 2개월, 노가다는 민망하게도 달랑 2일. 서빙은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노가다'는 이틀도 버티기가 힘들더라. 방학 내내 노가다판을 전전했던 대학 동기에게 존경과 연민의 눈길을 보내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과외는 성격적 결함(?)과 정치적 신념(!)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영역. 하지만, 나의 진짜 '캐쉬카우'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결혼식 비디오 촬영이었다. 당시로서는 꽤 드문 기술을 가진 덕에 하루 일당으로 남들 한달 월급인 15만원을 손에 쥐었으니, 최고급 아르바이트 였던 셈. 덕분에, 대학생활 내내 술값 계산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어쨋든, 당시 대학생들이 방학기간 내내 아르바이트에 나설 경우, 지금과 비슷하게 여름에는 2개월, 겨울에는 3개월, 1년중 5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5개월 꼬박 '서빙'에 나서면 100만원을 벌 수 있던 시절. 사정이 더 어려워,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공사판을 전전했던 친구들은 150만원 정도를 벌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뛰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시절.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 시급 3,500원짜리 인생은 죽어라고 뛰어다녀도 생활비는 커녕 등록금 조차 마련하기 힘들단다. 돈 없으면 대학 다니지 말라는 건가? 정녕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말그대로 쌍팔년도 얘기가 되버린 건가?
선거기간중에는 '대학등록금 반값'을 공언하던 이가, 당선되자마자 대학총장들과 어울려 와인잔을 기울이며 '자율' 운운 하는 터이니, 대학 등록금 반값은 진즉 물 건너 갔다. 본인도 주경야독으로 대학 졸업하고 성공했으니,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지금의 인건비 수준에서 그게 가능한지의 여부는 고민해 보지도 않았겠지.
그 양반 좋아하는 '영어'로 외치고 싶다. What the hell...
20년이 지난, 올해 1년간 대학 등록금 최대치가 천만원을 넘는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록금을 받던 국립대도 대폭 인상을 통해, 사립대 수준과 비슷하게 맞춘다는 억장 무너지는 뉴스가 들리는 걸 보면, 돈없는 이들은 대학 조차 다니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그렇다면, 20년 전 등록금과 올해 등록금의 체감 수준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88년도 까지만 해도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던 시절이다. 농촌에서 자식 하나 대학에 보내려면 소를 팔아야 했기에 생긴 말이다. 당시 소 한 마리 가격(암소 기준)은 180만원 정도. 시세가 좋으면 200만원쯤 받을 수 있었으니, 농가의 재산 목록 1호였던 암소 한 마리를 팔면, 부족하나마 얼추 등록금에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우 암소 한 마리가 450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하니, 두 마리를 팔아도 1년치 등록금을 대기도 벅차단다. 소값이 2.5배 정도 오르는 사이, 대학 등록금은 5배가 올랐다. 이제는 소 뿐만아니라, 땅도 팔고, 집도 팔아야 그나마 등록금을 댈 수 있는 시대가 돼버렸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 가장 많은 학생들이 했던 아르바이트는 3가지.
첫째는 이른바 '서빙'. 카페나 음식점, 호프집에서 하루에 10시간 정도 한 달 내내 일하면 보통 15만원에서 18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종이었다.
둘째는 '노가다'로 불리던 공사장 잡역부. 8시간 정도 일하고 받는 임금은 하루에 1만원. 이론 적으로는 한 달 꼬박 일하면 '서빙'의 두 배인 30만원을 손에 쥐는 셈이지만, 막노동은 아무나 하나? 공부만 하던 학생들의 경우, 하루 일하면 사흘을 앓아 누워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으니, 보통 학생들은 한 달에 보름 정도가 한계였다. 이른바 '노가다'는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선택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셋째는 '과외'. 당시 방문 과외는 엄연히 불법이었다. 하지만, 요즘도 그렇듯, '돈'은 항상 '법'보다 상위 계념이니, 상류층 자제들은 쉬쉬하며 고액의 불법 과외를 하고 있었고, 당시 과외비는 '불법 프리미엄'이 붙어, 보통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뛰어난 학벌과 탁월한 영업력(?)을 갖추고 있었던 내 친구는 당시, 한 달에 200만원까지도 벌었다고 하니, 투자 대비 수익이 가장 높은 직종이 바로 과외였다. 하지만,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치하에서 과외는 극히 일부의 수익원이었을 뿐, '빽' 없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기의 영역이었다.
나의 경우, '서빙'과 '노가다'의 경험이 있다. 서빙은 2개월, 노가다는 민망하게도 달랑 2일. 서빙은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노가다'는 이틀도 버티기가 힘들더라. 방학 내내 노가다판을 전전했던 대학 동기에게 존경과 연민의 눈길을 보내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과외는 성격적 결함(?)과 정치적 신념(!)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영역. 하지만, 나의 진짜 '캐쉬카우'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결혼식 비디오 촬영이었다. 당시로서는 꽤 드문 기술을 가진 덕에 하루 일당으로 남들 한달 월급인 15만원을 손에 쥐었으니, 최고급 아르바이트 였던 셈. 덕분에, 대학생활 내내 술값 계산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어쨋든, 당시 대학생들이 방학기간 내내 아르바이트에 나설 경우, 지금과 비슷하게 여름에는 2개월, 겨울에는 3개월, 1년중 5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5개월 꼬박 '서빙'에 나서면 100만원을 벌 수 있던 시절. 사정이 더 어려워,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공사판을 전전했던 친구들은 150만원 정도를 벌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뛰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시절.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 시급 3,500원짜리 인생은 죽어라고 뛰어다녀도 생활비는 커녕 등록금 조차 마련하기 힘들단다. 돈 없으면 대학 다니지 말라는 건가? 정녕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말그대로 쌍팔년도 얘기가 되버린 건가?
선거기간중에는 '대학등록금 반값'을 공언하던 이가, 당선되자마자 대학총장들과 어울려 와인잔을 기울이며 '자율' 운운 하는 터이니, 대학 등록금 반값은 진즉 물 건너 갔다. 본인도 주경야독으로 대학 졸업하고 성공했으니,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지금의 인건비 수준에서 그게 가능한지의 여부는 고민해 보지도 않았겠지.
그 양반 좋아하는 '영어'로 외치고 싶다. What the hell...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