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타오른다. 맹렬히 타오른다.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불붙었던 4.19 혁명의 봉화가 그랬고, 군사정권의 폭압에 항거했던 5.18 민중항쟁의 횃불이 그랬던 것 처럼, '절대 반지'마저 녹여낼 기세로 뜨겁게 타오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게 어디 야구뿐이랴. 촛불 행렬의 끝이 언제, 어디 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촛불이 10대와 20대의 미래를, 아니,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되집어 보건데, 처음 권력을 향해 양초를 치켜 세운 건 10대들이었다. 휴대폰 액정에 코를 박고, MP3에 귀를 맡긴 아이들. 8할이 연예인되기를 소망한다는, 한없이 나약해 보였는 그 아이들이 양초를 들고 거리로 나섯다. 10대들 손에 들린 양초에 불을 붙인 건 20대였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며, 짓밟히고 착취 당해도, 거리로 나서길 주저하던 그들, 세상을 향한 분노를 컴퓨터 자판에만 쏟아냈던 분절화된 그들이 뜨거워진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러자, 30대와 40대가 종이컵이 되어, 10대와 20대가 힘겹게 붙여낸 불꽃을 지켜내려 한다. 독재권력에 맞서 온몸을 불살랐던 과거의 그들이 그랬듯이...
권력은 강하다. 그 권력을 쥐어준 건 국민이건만, 국민 개개인은 감히 국가권력과 싸워 볼 엄두 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우리 국민은 결정적인 순간, 몸을 일으켜 절대 권력과 싸워왔다. 그렇게 정권을 바꿔냈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1987년 6.10 항쟁 이후, 국민은 단 한 번도 절대 권력과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다. 따라서, 80년 이후에 태어난 지금의 10대와 20대에게는 권력에 맞서 싸워 본 경헙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항상 나약해 보였다. 사학비리로 상징되는 학교권력의 직접 피해자였던 10대들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권력에 맞서길 두려워했다. 수천억원의 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매년 등록금을 올려 학생들을 착취하는 대학권력과의 싸움 역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소위 싸움의 '기술'과 '경험'이 없는 그들은 파편화되어, 단일 대오을 형성할 수 없었다. 집단의 힘, 단결의 힘을 체득하지 못한 그들은 권력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4.19 혁명을 이뤄낸 50대와 5.18 민중항쟁의 아픔을 거쳐, 6.10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40대가 가진 최고의 자산은 바로 '절대권력과 싸워 이긴 경험'이다. 단일 대오의 폭발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오늘 날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후대에 전수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들 대부분이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어, 10대와 20대를 착취하는 또 다른 권력이 되어있는 판이다.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싸움의 판세가 달라질 것이다. 아니, 꼭 바뀌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공유한 냉철한 이성이 갑옷이 되고, 촛불로 달궈낸 뜨꺼운 심장이 무기가 되어, 절대 권력마저도 쓰러뜨릴 수 있음을 깨우치지 않았는가? 10대와 20대에게 바라노니, 부디, 춧불집회로 체득한 싸움의 '기술'과 '경험'을 버리지 말라. 그대들이 흘린 눈물과 피를 뼈에 새겨라. 그리하여, 이 싸움이 끝난 후, 한국 사회 곳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부패 권력'과의 싸움에 나서라. 자신감을 가져라. 그대들이라면, 능히 이길 수 있다. 사우론의 '절대반지' 마저 녹여낸 마당에, '오크'와 '우르크 하이' 쯤이야 우습지 않은가?
1960년 4월 19일.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양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거리로 나섯다.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양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거리로 나섯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닌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
거리로 나간 진영숙양은 그날, 성북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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