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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필명인 'PD the ripper'로 짐작할 수 있듯, 나는 공포영화 마니아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 3부작을 보며 메스꺼워하기는 커녕, 낄낄거리던 이상한 고등학생. 타르코프스키과 베르히만, 고다르와 트뤼포의 영화를 주워섬기는 영화학도들 앞에서, 이상 야릇한 '닥터 기글'의 웃음소리를 최고로 꼽던, 취향 독특한 운동권. 토요일밤마다 흐느적거리며 비디오가게로 들어가,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 뚝 떨어질 듯한 '시뻘건 라벨'이 붙은 공포영화 비디오를 한 아름 들고 나오던, '멘탈'이 의심스러운 107동 총각. 그게 바로 나였다.

공포영화 상영관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터져나오는 비명을 씹어삼키며, 공포에 질려 몸서리칠 때, 나는 대체로 코웃음치다가 낄낄거리고, 어느 순간 박장대소를 터뜨리거나, 아주 가끔은 졸기도 한다. 남과 다른 나만의 감상법이 따로 있는 탓이다. 인간의 욕망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장르적 쾌감부터, '더미(dummy)'의 솜털에 고스란히 담긴 장인의 땀방울을 찾아내는 발견의 기쁨까지. 사실, 내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가끔, 나와 함께 공포영화를 본 지인들이 내게 묻는다. 어쩌면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영화를 태연자약하게 (때로는 키득거리며) 볼 수 있는 지를.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단 한 마디만 건네고 만다.

"영화잖아?"

그렇다. 공포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나만의 비법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포영화의 비현실성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방법이다.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며?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 하이~얀 타일 위로 뿌려진 핏물도, 댕강 잘려나간 '모가지'도, 심지어 아크로바틱한 체위로 마룻바닥을 기어오는 사다코까지, 죄다 가짜다. 마음 속으로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팀 버튼의 '화성침공'에 나오는 화성인들과 똑같다고 되뇌이면, 더이상 무서울 이유가 없다. 왜? 몽땅 황당무계한 가짜니까!
 
역설적으로, 강심장의 표본처럼 굴던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게 있긴 했다. 한 때, 안방극장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제목에 '다큐멘터리'를 떡 하니 붙이고 등장한 이 프로그램은 나의 방어기재를 단숨에 무력화 시켰다. 다큐멘터리, 즉, '사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청자들의 '경험담'이라는 구실을 방패막이로 삼아, 민간에 떠돌던 귀신이야기를 드라마적 구성으로 '리얼'하게 만들었으니, 애초에 나의 비법인 '비현실성의 끊임없는 환기' 따위는 먹혀들 틈이 없었다. 상상해보라. 숱한 슬래셔와 하드고어 무비에도 끄떡없던 '냉혈한'이, 3류 공포영화만도 못한 엉성한 스토리의 TV 프로그램을 보며 기겁하는 모습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 이불도 뒤집어썼다.

나는 요즘도 매주 DVD를 살 때 마다, 새로 나온 공포영화를 반드시 끼워 넣는다. 최악의 실패작일 지라도, 무조건 사놓고 본다. 엉성하면 엉성한 대로, 영화보는 내내 감독이며 스텝들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니 말이다. 잘 만든 공포영화라고 해도, 나의 '비현실성의 끊임없는 환기'라는 방어기재가 여전히 잘 작동하는 터라, 별 걱정이 없다.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역시, 진작에 전설이 됐으니, 더이상 이불 뒤집어 쓰는 추한 꼴을 연출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요즘 내게는 이상한 병이 생겨 버렸다. 다름아닌 '뉴스를 무서워하는 병'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뉴스 공포증'이나 '뉴스 울렁증' 정도가 되겠다. 정치 뉴스를 보면, 나 어릴적 어른들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군부 독재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간담이 서늘해진다. 경제 뉴스를 볼라치면, 태풍이 몰아치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우왕좌왕거리는 한국 경제가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게 된다. 사회 뉴스에 이르면,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가 '슬래셔의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오금을 저리고, 그나마 덜 '하드'할 거라 믿었던 교육 뉴스를 보노라면,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해가는 학교의 흉측한 몰골이 비수가 되어, 나의 심장을 파고든다.

'비현실성의 환기' 따위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건 뉴스다. 지금 이순간,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니, 어찌 공포스럽지 아니한가? 너무 많은 '하드고어'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동시에 펼쳐지니, 그저 나이가 들어 걱정이 많아졌다고 치부할 수도 없다. 나는 요즘, 뉴스가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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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계 최고의 합을 자랑하는 최공과 김공


역사는 항상 밤에 이뤄지는 법. 3M흥업도 어느 '깊고 푸른 밤' 술집에서 시작됐다. 출발은 '놀이터'였으나, 어쩌다보니 매체와 사적 공간을 넘나드는 희한한 궤적을 그리게 됐고, 덕분에, 3M흥업 멤버들의 소소한 일상을 포스팅하기가 어려워졌다. 지금도 가끔 방명록에 들러, 멤버들의 일상을 시시콜콜 중계하며, '끼리끼리' 키득거렸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미친 척' 날라리 문화건달들의 노는 꼴을 까발려 보련다.

요즘 우리 멤버들의 최대 관심사는 9월에 출발할 '인디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이다. 어느 영화감독의 표현대로, '마초,마초,대마초'들인 바, '폼' 안나는 짓은 죽어도 못하는 3M흥업은 '무슨 무슨 애드' 따위는 애초에 달아본 적도 없다. 하지만, 테터앤미디어 직원분들의 '알아서 척척 배너광고'에 힘입어, 제법 쏠쏠한 돈이 모이게 됐다. 바로, 그 쌈짓돈을 화끈하게 쓰려는 참이니, 어찌 가슴이 설레지 않겠는가? (기대하시라~ 9월 1일 대개봉)

따라서, 엊그제 모임의 화두는 당연히 '인디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였다. 꼴랑 음반 한 장 만들어 주면 바닥이 드러날 '푼돈' 이건만,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사람을 마시고, 결국은 술이 술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다보니, '만리장성' 몇 개는 세우고도 남을 거창한 플랜이 만들어졌다. 둥근 해가 희번덕거리는 아침이 되면, 간밤에 세운 계획의 대부분이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고, 실현 가능한 의견이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 민망한 수준에 불과할 것임을 모르지 않으나, 블로그의 힘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우리를 달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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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한 고양이, 그녀


김밥 도시락을 '로보트 태권브이 가방'에 넣어두고, 소풍날 아침을 기다리는 초등학생 마냥 끝없이 재잘거린 공간은, 3M흥업의 아지트인 홍대앞 피카소 거리에 위치한 'Azul'이다. 적당히 달큰한 와인과 알싸한 위스키 폭탄에 취해 헤롱거려도, 아프리카와 남미를 수시로 넘나드는 버라이어티한 음악으로, 휘청이는 무릎을 살포시 잡아주는 그곳. 칼럼니스트이자 DJ, 기타리스트이면서 소믈리에인 재주꾼 황사장이 터를 다진 'Azul'. 손님이 없던 그날, 우리끼리 모여 앉아 황사장이 연주하는 'Highway star'에 환호작약.

다음 코스는 극동방송앞 '스튜디오 80'. 소시적, 롤라장과 고고장에서 펄펄 끓는 젊은 피를 식혀냈던 그시절 그음악에 맞춰 흐느적 거린다. 그렇게 우리는 철없이 유치하게 놀며, 또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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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숙취에 찌들어 해변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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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타오른다. 맹렬히 타오른다.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불붙었던 4.19 혁명의 봉화가 그랬고, 군사정권의 폭압에 항거했던 5.18 민중항쟁의 횃불이 그랬던 것 처럼, '절대 반지'마저 녹여낼 기세로 뜨겁게 타오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게 어디 야구뿐이랴. 촛불 행렬의 끝이 언제, 어디 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촛불이 10대와 20대의 미래를, 아니,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되집어 보건데, 처음 권력을 향해 양초를 치켜 세운 건 10대들이었다. 휴대폰 액정에 코를 박고, MP3에 귀를 맡긴 아이들. 8할이 연예인되기를 소망한다는, 한없이 나약해 보였는 그 아이들이 양초를 들고 거리로 나섯다. 10대들 손에 들린 양초에 불을 붙인 건 20대였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며, 짓밟히고 착취 당해도, 거리로 나서길 주저하던 그들, 세상을 향한 분노를 컴퓨터 자판에만 쏟아냈던 분절화된 그들이 뜨거워진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러자, 30대와 40대가 종이컵이 되어, 10대와 20대가 힘겹게 붙여낸 불꽃을 지켜내려 한다. 독재권력에 맞서 온몸을 불살랐던 과거의 그들이 그랬듯이...

권력은 강하다. 그 권력을 쥐어준 건 국민이건만, 국민 개개인은 감히 국가권력과 싸워 볼 엄두 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우리 국민은 결정적인 순간, 몸을 일으켜 절대 권력과 싸워왔다. 그렇게 정권을 바꿔냈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1987년 6.10 항쟁 이후, 국민은 단 한 번도 절대 권력과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다.  따라서, 80년 이후에 태어난 지금의 10대와 20대에게는 권력에 맞서 싸워 본 경헙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항상 나약해 보였다. 사학비리로 상징되는 학교권력의 직접 피해자였던 10대들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권력에 맞서길 두려워했다. 수천억원의 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매년 등록금을 올려 학생들을 착취하는 대학권력과의 싸움 역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소위 싸움의 '기술'과 '경험'이 없는 그들은 파편화되어, 단일 대오을 형성할 수 없었다. 집단의 힘, 단결의 힘을 체득하지 못한 그들은 권력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4.19 혁명을 이뤄낸 50대와 5.18 민중항쟁의 아픔을 거쳐, 6.10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40대가 가진 최고의 자산은 바로 '절대권력과 싸워 이긴 경험'이다. 단일 대오의 폭발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오늘 날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후대에 전수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들 대부분이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어, 10대와 20대를 착취하는 또 다른 권력이 되어있는 판이다.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싸움의 판세가 달라질 것이다. 아니, 꼭 바뀌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공유한 냉철한 이성이 갑옷이 되고, 촛불로 달궈낸 뜨꺼운 심장이 무기가 되어, 절대 권력마저도 쓰러뜨릴 수 있음을 깨우치지 않았는가? 10대와 20대에게 바라노니, 부디, 춧불집회로 체득한 싸움의 '기술'과 '경험'을 버리지 말라. 그대들이 흘린 눈물과 피를 뼈에 새겨라. 그리하여, 이 싸움이 끝난 후, 한국 사회 곳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부패 권력'과의 싸움에 나서라. 자신감을 가져라. 그대들이라면, 능히 이길 수 있다. 사우론의 '절대반지' 마저 녹여낸 마당에, '오크'와 '우르크 하이' 쯤이야 우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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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양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거리로 나섯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닌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

거리로 나간 진영숙양은 그날, 성북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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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조금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사랑을 얻기 위해, 그 혹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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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는 죽지 않았으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죽은 후에는 이미 죽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죽음이 엄습하는 찰나의 순간마저 행복할 수 있다면, 더이상 죽음은 우리가 아는 죽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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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호기심이 조종사와 리포터, 톰 행크스의 아들을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도락의 상자는 어김없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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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8학번이다. 올림픽 덕분에 '88 꿈나무(올림픽 메달사냥을 위해 조련되던 국가대표 상비군을 일컽는 말)'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학번이다. 올해 신입생들이 08학번이니, 딱 20년 전 얘기다. 당시, 나의 대학 등록금은 1학기당 4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20년이 지난, 올해 1년간 대학 등록금 최대치가 천만원을 넘는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록금을 받던 국립대도 대폭 인상을 통해, 사립대 수준과 비슷하게 맞춘다는 억장 무너지는 뉴스가 들리는 걸 보면, 돈없는 이들은 대학 조차 다니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그렇다면, 20년 전 등록금과 올해 등록금의 체감 수준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88년도 까지만 해도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던 시절이다. 농촌에서 자식 하나 대학에 보내려면 소를 팔아야 했기에 생긴 말이다. 당시 소 한 마리 가격(암소 기준)은 180만원 정도. 시세가 좋으면 200만원쯤 받을 수 있었으니, 농가의 재산 목록 1호였던 암소 한 마리를 팔면, 부족하나마 얼추 등록금에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우 암소 한 마리가 450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하니, 두 마리를 팔아도 1년치 등록금을 대기도 벅차단다. 소값이 2.5배 정도 오르는 사이, 대학 등록금은 5배가 올랐다. 이제는 소 뿐만아니라, 땅도 팔고, 집도 팔아야 그나마 등록금을 댈 수 있는 시대가 돼버렸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 가장 많은 학생들이 했던 아르바이트는 3가지.

첫째는 이른바 '서빙'. 카페나 음식점, 호프집에서 하루에 10시간 정도 한 달 내내 일하면 보통 15만원에서 18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종이었다.

둘째는 '노가다'로 불리던 공사장 잡역부. 8시간 정도 일하고 받는 임금은 하루에 1만원. 이론 적으로는 한 달 꼬박 일하면 '서빙'의 두 배인 30만원을 손에 쥐는 셈이지만, 막노동은 아무나 하나? 공부만 하던 학생들의 경우, 하루 일하면 사흘을 앓아 누워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으니, 보통 학생들은 한 달에 보름 정도가 한계였다. 이른바 '노가다'는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필요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선택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셋째는 '과외'. 당시 방문 과외는 엄연히 불법이었다. 하지만, 요즘도 그렇듯, '돈'은 항상 '법'보다 상위 계념이니, 상류층 자제들은 쉬쉬하며 고액의 불법 과외를 하고 있었고, 당시 과외비는 '불법 프리미엄'이 붙어, 보통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뛰어난 학벌과 탁월한 영업력(?)을 갖추고 있었던 내 친구는 당시, 한 달에 200만원까지도 벌었다고 하니, 투자 대비 수익이 가장 높은 직종이 바로 과외였다. 하지만,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치하에서 과외는 극히 일부의 수익원이었을 뿐, '빽' 없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기의 영역이었다.

나의 경우, '서빙'과 '노가다'의 경험이 있다. 서빙은 2개월, 노가다는 민망하게도 달랑 2일. 서빙은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노가다'는 이틀도 버티기가 힘들더라. 방학 내내 노가다판을 전전했던 대학 동기에게 존경과 연민의 눈길을 보내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과외는 성격적 결함(?)과 정치적 신념(!)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영역. 하지만, 나의 진짜 '캐쉬카우'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결혼식 비디오 촬영이었다. 당시로서는 꽤 드문 기술을 가진 덕에 하루 일당으로 남들 한달 월급인 15만원을 손에 쥐었으니, 최고급 아르바이트 였던 셈. 덕분에, 대학생활 내내 술값 계산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어쨋든, 당시 대학생들이 방학기간 내내 아르바이트에 나설 경우, 지금과 비슷하게 여름에는 2개월, 겨울에는 3개월, 1년중 5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5개월 꼬박 '서빙'에 나서면 100만원을 벌 수 있던 시절. 사정이 더 어려워,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공사판을 전전했던 친구들은 150만원 정도를 벌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뛰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시절.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 시급 3,500원짜리 인생은 죽어라고 뛰어다녀도 생활비는 커녕 등록금 조차 마련하기 힘들단다. 돈 없으면 대학 다니지 말라는 건가?  정녕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말그대로 쌍팔년도 얘기가 되버린 건가?

선거기간중에는 '대학등록금 반값'을 공언하던 이가, 당선되자마자 대학총장들과 어울려 와인잔을 기울이며 '자율' 운운 하는 터이니, 대학 등록금 반값은 진즉 물 건너 갔다. 본인도 주경야독으로 대학 졸업하고 성공했으니,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지금의 인건비 수준에서 그게 가능한지의 여부는 고민해 보지도 않았겠지.

그 양반 좋아하는 '영어'로 외치고 싶다. What the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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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m흥업에 포스팅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대단히 흥미로운 자료를 보게 됐다. 할리우드가 한국의 미드 열풍에 대응하는 방식에 관한...

영상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P2P사이트들의 연간 매출액이 4,000억원 수준이란다. 물론, 서버가 한국에 있고, 정통부에 신고된 '양성화 업체'들만의 매출액이다. 이 업체들은 유저들에게 패킷요금으로, 보통 영상파일 하나당 100원내외를 받는다고 한다. 그 100원이 모여 무려 4,000억원이 된 셈이니, 한국 다운로드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 시장인지 쉽게 알 수 있다.
 
P2P업체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가장 다운로드 빈도수가 높은 콘텐츠가 '미드'란다. 그리고, 미드에 열광하는 네티즌들을 위해, 자막을 만들어 올리는 이들이 있는데, 해당 '미드의 팬카페'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헐리우드 제작사가 자막을 제작해, 미드의 불법유통을 가능케하는 '미드의 팬카페'에게 대본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돈이라면 물불을 안가리는 할리우드가 자신들의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유통시키도록 방조, 혹은, 조장한다고? 도대체 왜 ?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지금 당장은 손해보는 짓처럼 보이지만,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란다. 게다가, 한미FTA가 발효되면, 오히려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밑밥'이 될 수도 있단다. 이게 뭔소리냐고?

조만간, 자료수집이 끝나면 3M흥업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줄터이니, 조금만 기다리시라. 개봉박두~, 할리우드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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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파다.

분류없음 2008/01/07 12:06
용어는 인식을 규정하는 그릇이기에, 어느 사회이건 용어을 놓고 갑론을박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당선자'와 '당선인'을 놓고 벌어지는 '쓰잘데기 없는 공방' 조차도 의미를 갖는 이유일 터. 특히, 우리 사회는 굴곡많은 현대사로 인해, 용어 규정이 몹시 이데올로기적이다. 좌파에 대한 규정도 그 가운데 하나겠지.

누군가 정치적으로는 유지 보다는 변화를, 경제적으로는 성장 보다는 분배를 주장하고, 사회적으로는 가진자 보다는 못가진자에게 눈길을 드리우면, 어김없이 상대방은 그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점과는 전혀 상관없이, 좌파라 부른다. 만약, 그러한 용어 규정이 맞다면, 나는 좌파다.

물론, 지난 한 해, 3M흥업에 올려진 나의 글들을 모두 읽어 본 분이라면, 지금의 정치적 '커밍아웃' 이전, 나의 정치적 지향점이 '왼쪽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고?

이건 전투력 100% 충전을 위한, 일종의 약속이자, 다짐이라고 보면 된다. 더이상은 '그들' 하는 짓을 참아 줄 수 없다. 지금은 날 선 'Ripper'를 써야할 시간.  

Posted by PD the ripper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왠지 달라져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나 보다. 나 역시 비슷한 강박을 느껴, 해가 바뀌면 항상 하는 고민이 바로 담배다.

슬슬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딸들의 성화도 영 거슬리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건 바로 체력이다. 언제부터인지, 부쩍 체력에 문제가 생겼다. 이틀을 꼬박 지새우고도 멀쩡하게 아침을 맞던 때가 엊그제 였는데, 요즘엔 하루도 힘들다.

늙어서 그렇다고?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새 피워무는 담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늙는 건 어
쩔 수 없지만, 담배를 '어쩔'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고민이다.

하루종일 편집실에 처박혀 편집을 하다보면, 담배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집도 나름, 창의력이 필요한 작업인지라, 앞 뒤가 꽉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담배 한개비를 피워 물면, 희뿌연 담배연기를 따라 사색의 나래가 펼쳐지니,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동료PD들 가운데 비흡연자는 건강염려증에 걸린 '그' 하나 뿐이다.

이 놈의 담배를 어찌 해야 할까? 끊자니, '창조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재간이 없고, 계속 피우자니, 진작에 바닥을 드러낸 체력이 문제다. 이래 저래 할 일은 태산인데, 고민만 늘어간다.  

   
Posted by PD the r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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